아무 일도 없던 평범한 어느 날, 나는 문득 멈춰버렸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회사에 가는 것도,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전부 피곤했다.
일을 못하는 건 아니었다. 여전히 메일은 잘 보내고, 보고서는 잘 쓰고, 회의도 무난하게 끝냈다.
그런데 마음이 무거웠다.이유 없이.
사람들은 그걸 슬럼프라고 불렀다.
슬럼프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슬럼프를 감정의 문제라고 여긴다.
“그냥 멘탈이 흔들린 거야”
“한동안 힘들 수도 있지,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물론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나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슬럼프는 ‘그저 기분 나쁜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다.
“지금 좀 멈춰서 생각 좀 하자”
“이 길이 정말 내가 가고 싶은 길이 맞는지 돌아보자”
“너, 무리하고 있었던 거 알아?”
그러니까 슬럼프를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말자.
오히려 슬럼프는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인생 점검표다.
회복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나는 한동안 ‘나는 왜 이렇게 멘탈이 약하지?’ 하고 자책했다.
SNS를 보면 다들 열정적으로 일하고, 주말엔 자기계발 하고, 이직도 하고, 스타트업도 차리고, 반짝거렸다.
그에 비해 나는 매일 아침 ‘일하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월급날도 그저 무덤덤했다.
그런데 정말 회복력이란 게 누군가에겐 타고나고, 누군가에겐 없는 걸까?
아니다.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회복력은 ‘나를 믿는 연습’에서 자란다.
오늘 무기력했지만, 그래도 퇴근 후 스트레칭을 했다는 사실.
오늘도 재미없는 미팅이었지만, 그래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는 사실.
오늘은 많이 버거웠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켰다는 사실.
이런 ‘아주 사소한 나’를 놓치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그게 회복력의 시작이다.
진짜 회복은 ‘완벽한 나’를 버리는 것
슬럼프는 이상하게도, 잘하려고 할수록 더 깊어진다.
완벽하고 싶고,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이 쌓일수록
어디선가 무너진다.
그리고 그 무너진 틈으로 슬럼프는 들어온다.
그런데 묘하게도, 불완전한 나를 인정하는 순간부터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못해도 괜찮다고, 오늘은 그냥 버티는 것만으로도 잘한 거라고
나 스스로를 안아주는 법을 배우면, 회복은 시작된다.
나는 어느 날부터 ‘완벽한 하루’ 대신 ‘버텨낸 하루’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하루하루가 쌓여 어느 순간 다시 걸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분명한 걸음으로.
슬럼프를 견디는 나만의 기술
사람마다 회복의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나는 슬럼프가 왔을 때, 몇 가지 작은 기술들을 써먹곤 했다.
- 정리되지 않은 감정을 그냥 적는다.
예쁘게 쓰지 않아도 된다. 그냥 마음속에 있는 단어를 흘리듯 써 내려간다.
‘오늘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었어. 짜증나. 아무도 나한테 뭐라 안 했는데 내가 나를 너무 몰아붙이는 것 같아.’
이렇게 쓰다 보면, 내 안에 있던 뭉친 감정이 스르륵 녹아내린다. - ‘나만의 안전한 루틴’을 만든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음악을 듣거나,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있는 것도 좋다.
반복되는 작고 안전한 행동이 나에게 “괜찮아, 아직 너는 너야”라고 말해준다. - ‘잘하고 싶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락을 스스로에게 준다.
오늘 하루는 그냥 흘려보내도 된다고, 이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고
스스로를 조금 풀어주는 날도 필요하다.
커리어 회복력은 방향을 아는 힘이다
우리는 커리어를 ‘쌓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때로는 쌓는 것보다 버티고, 기다리고, 돌아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실력이란, 성과란, 경력이란 결국 시간과 함께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슬럼프는 그 과정에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묻는 신호다.
“지금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회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기억하자
슬럼프에 빠진 당신은 약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삶을 다시 돌아보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다.
그 용기 하나면 충분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은 이미 당신 안에 있다.